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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편 : 부르고뉴에서 꼭 가보아야 할 2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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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ww.visitfrenchwine.com


 

 

 

 

1. Château Clos de Vougeot 샤또 끌로 드 부조


 

 

샤또 끌로 드 부조는 부조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12세기에 지어진 시토(Cîteaux) 수도원이었다. 이곳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수도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샤또를 둘러싼 포도원들은 수도승들이 재배, 와인을 만들었던 곳이다. 혁명 이후 1818년경 샤또와 포도원은 쥘 우바흐(Jules Ouvard)란 사람에 의해 매각되면서 사유화된다. 이후 쥘은 샤또를 샤또 드 지이(Château de Gilly)의 수도사들이 살도록 배려하였으며, 포도원은 자신이 직접 포도를 재배하였다. 그래서 1861년까지 끌로 드 부조 포도밭은 하나의 생산자가 모든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던 모노폴이었다. 


 

 

이후 쥘이 사망하자 그의 상속자는 끌로 드 부조를 매각하게 된다. 그때 같은 지역의 와인 상인 6명에게 분할 매각되며, 그중 한 명인 레옹스 보퀘(Léonce Bocquet)가 샤또와 함께 매입하게 되며 샤또를 복원한다.


 

 

샤또는 꼬뜨-도르(Côte-d’Or)의 에띠엔 까뮈제(Étienne Camuzet)라는 의원에 또다시 매각되며, 샤또를 기사단(라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뒤 따스뜨방(La Confré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  본부로 사용토록 허용하였으며, 이후 1944년에 샤또를 완전히 넘겨주게 된다. 5년이 지난 1949년에는 샤또가 역사적이며 국제적인 유적 문화로 등극하게 되며 그때부터 일반인에게 공개 되기 시작했다. 


 

 

포도원 (The vineyard) 

끌로 드 부조의 포도원은 1098년에 생겨났으며 시토 수도승들에 의해 개간되었다. 처음에 기부에 의해 샤또의 포도원이 생겨났으며 낮은 언덕에서부터 국도 주변의 평지까지 총 50헥타르의 면적에 해당된다.


 

 

수도승들이 거의 7세기 동안 샤또와 포도원의 명성을 쌓았으며 샹베르땅의 포도원과 함께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포도산지로 만들었다. 오늘날에 포도원은 80여 명의 소유주가 분할, 소유하고 있으며 심장부 샤또에 있는 라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따스뜨뱅 기사단은 포도원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와인도 생산하지 않는다. 


 

 

부르고뉴의 와인의 역사는 이곳에서부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토 수도승들은 포도 재배 기술, 그리고 전지 작업 기술 등 전반적인 포도 재배법을 발전 및 전수했다. 수도승들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기 위해 별도의 꺄브를 갖춘 양조장을 샤또 안에 만들었다. 그 규모는 2,000개의 오크 통이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크며, 두 개의 비석 기둥을 포함한 총 8개의 기둥이 천정을 받들고 있다. 지상에 설치한 셀러는 외부의 환경에 잘 보호받도록 튼튼하게 지어졌으며 그 안에 또 하나 볼만한 것은 목재로 만든 4개의 대형 압착기이다.


 

 

이후에 샤또는 수 세기 동안 방치되었었으며, 19세기 한 와인 상인이 매입하면서 새롭게 복원하였다. 하지만 2차 대전을 맞이하면서 샤또는 또 한 번 방치와 훼손을 입게 되는데 꽁프레리 기사단의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지금은 거의 복원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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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ww.visitfrenchwine.com

 

 

2. 오스피스 드 본(Hospices Civils de Beaune) 


 

 

오스피스의 탄생


 

 

Hôtel-Dieu(오뗄-디유) 1443년 8월 4일, 필립 르 봉(Philippe le Bon) 군주의 통치하에 있을 때 재상이었던 니꼴라 홀랑(Nicolas Rolin)과 그의 부인 귀곤느 드 살랑(Guigone de Salins)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곳은 1452년도에 처음으로 환자를 받았다고 한다. 갈 곳 없는 고아, 노인들, 질병 환자, 임산부 등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료할 병원으로서 또한 은신처로서 사용되었으며, 중세부터 1971년까지 병원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병원의 역할은 더 이상 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정 충원은 갖가지 기부금에 의해 충당되었으며, 그중에 자신의 포도원을 헌납하는 경우도 있었다. 증여로 획득한 포도원에서 자체적으로 포도를 경작하고 와인을 양조한 뒤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환자를 돌보는데 사용하였다. 현재는 매년 11월 셋째 주 자선 경매를 통한 수익금을 통해 주변 불우이웃을 돕는다.

 

 

 

글 : 비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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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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