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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GOGNE EXPERIENCE
 

27편 : 로버트 파커와 부르고뉴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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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커(Robert Parker)(Credit: Edwin Remsberg / Alamy Stock Photo)


 

 

로버트 파커는 부르고뉴 와인을 싫어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평론가인 그가 물론 “저는 부르고뉴 와인이 싫습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일련의 행동들이 그렇다고 말해준다. 그는 80년대 이후 부르고뉴에 공식적으로 방문한 일이 없다. 그가 매년 보르도를 방문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또한 보르도와 론 지방에 관한 책을 발간했어도 부르고뉴에 관한 책은 물론 와인 평도 없다. 피에르-안토안 로바니(Pierre-Antoine Rovani)란 사람이 그를 대신해 부르고뉴 와인 평을 맡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 중 하나라는 부르고뉴를 건너뛰고 론 지방으로 건너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로마네-꽁띠 와인이 있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화이트 와인 샤블리와 몽라셰가 생산되는 부르고뉴, 떼루와라는 개념이 처음 유래된 곳이며 20세기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보졸레 누보가 있는 곳이 바로 부르고뉴 지방이다.

  

 

 

이처럼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관심 가져 볼 만한 부르고뉴와 그 와인들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전 세계 와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고 평가받는, 그래서 백만 불짜리 코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부르고뉴 와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과연 로버트 파커가 부르고뉴 와인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잡지 인터뷰에 실린 그의 말을 들어보자.


 

 

“부르고뉴는 내가 좋아하면서 동시에 실망한 지역이다. 그곳의 와인, 그리고 생산자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번 방문했었다. 그러나 매번 이해할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곤 했다… (중략)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접대하는 면에서)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로버트 파커의 심정이 어떨지 너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르고뉴와 보르도는 토양이나 포도 품종은 물론 와인 맛도 다른, 너무 개성이 뚜렷한 두 지역인데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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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또 마고(Château Margaux)(Credit : 보르도농부)


# 보르도 A 샤또 안의 정원


전문 조경사가 가꾸었을법한 아름다운 정원이 인상적이다. 안내인. 그는 방문객들을 위한 전문 안내인이다. 깨끗하고 말쑥한 차림새의 그가 유창한 영어로 샤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양조실과 지하 꺄브를 다 돌고 나서 들어간 곳은 와인 시음을 위한 홀. 중세풍의 우아한 내부 실내장식 그리고 알맞게 배치된 고가구가 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미리 준비해놓은 와인 잔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옆으로는 역시 디캔터에 들어있는 붉은 포도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면 방문객들은 찬사를 잊지 않는다. 안내인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지는 그의 친절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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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노엘라(George Noëllat)(Credit : Jeff Kwak)


# 부르고뉴 B 도멘 안의 양조실


커다란 알루미늄 양조통이 벽에 늘어서 있다. 바닥에는 기다랗고 굵은 호스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이곳이 양조실 겸 손님 접대용 응접실이다. 도멘의 주인이 나타난다. 작업복 차림에 흙 묻은 장화를 신고 있다. 포도밭에서 일하다 들어온 것이다. 그을린 얼굴이 영락없는 농부다. 투박한 그의 설명이 끝나면 지하 꺄브로 내려간다. 그는 와인 시음을 위해 준비한 유리봉을 꺼낸다. 스포이트 모양의 긴 유리관이다. 이걸 오크 통 입구에 넣고는 입으로 쭉 빨아 올린다. 그러면 방문자는 얼른 와인 잔을 갖다 댄다. 그렇지 않으면 스포이트라서 와인이 바닥으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방문자가 많다면 비좁은 꺄브에서  줄을 서서 자기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시음하고 남은 와인은 오크 통에 다시 넣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바닥에 버리지 말고…


 

 

이왕 같은 맛이라면 보르도 와인 한 잔이 감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변호사 출신의 로버트 파커 같은 이가 부르고뉴 생산자들의 투박한 대접에 당황하는 건 당연하다. 강남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시골 논둑 길에서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 부르고뉴 와인의 매력이 있다.

 

 

 

보르도 와인이 샤또의 전통과 명성의 와인이고, 샹파뉴가 화려한 상업 메이커의 와인, 캘리포니아 와인이 고도로 발달된 기술문명의 와인이라면 부르고뉴 와인은 그저 농부의 와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부르고뉴에도 루이 자도(Louis Jadot)나 루이 라뚜르(Louis Latour) 같은 대규모의 네고시앙 회사가 있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유서 깊은 도멘들이 있다. 하지만 규모의 크고 작음, 명성의 유무를 떠나서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농부의 마음처럼 천혜의 자연조건을 주신 신의 섭리에 순응하려는 것이고, 와인에는 장인의 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비록 그 방식이 투박하더라도 말이다. 부르고뉴를 방문하다 보면 귀가 따갑게 듣는 떼루아라는 것도 결국 농부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땅을 일구어본 자만이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할 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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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그로(Anne Gros)(Credit : Jeff Kwak)


 

 

하늘의 별만큼 많다는 와인의 종류처럼 와인의 맛도 다양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철학도 다양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 만났던 부르고뉴의 젊은 와인 메이커가 생각난다. 그는 전통 방식에 따라 와인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하고 난 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러 작업들을 시도했던 전과 달리 발효되어가는 양조 통을 가만히 지키고 앉아 있는 게 그의 일이 되었다. 그런데 차라리 이것저것 넣어도 보고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게 편하지 그냥 보고만 있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공감이 갔다. 요리 공부를 끝내자마자 레스토랑에 입사한 신입이 어떻게 선배들의 몫을 해낼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재료가 똑같더라도 말이다. 연륜과 감에서 나오는 손끝 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작업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모두 꿰뚫고 있어 이젠 모든 일들이 내 살처럼 익숙해진 고수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부르고뉴에는 분명 그런 고수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고수들은 부르고뉴의 와인만의 철학과 개성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글 : 비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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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Vinocus]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복합적이며 가장 까다로운 명산지이다.
(CLIVE COATES, MW)
최근 들어 부르고뉴 애호가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마실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모처럼 기회에 구매한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데 그만큼 정보나 지식이 따라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지만 마을 별, 끌리마 별, 크뤼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낸다. 끌리마(Climat)만 하더라도 부르고뉴에는 1,240여 개가 존재한다. 부르고뉴 와인이 다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다양한 떼루아가 존재한다. 부르고뉴는 떼루아의 산지다. 토양, 기후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기적 영향과 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긴다는 건 곧 그만큼 부르고뉴의 기후, 토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르고뉴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소비자의 시각으로 기획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냈다. 부르고뉴 지식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제대로 골라보자. 또한 이 시리즈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썼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은 뒤로 미루어도 괜찮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 보자. 깊고도 넓은 부르고뉴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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